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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 IT | Technology ]

M1A1 에이브럼스 탱크가 페르시아만 전쟁에서 중요한 이유

by 【╉Ⅹ¬ ㆍχ】 2023.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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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A1 에이브럼스 탱크가 페르시아만 전쟁에서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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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은 1980년 2월에 M1 에이브럼스 전차의 첫 배치를 받았으며, 이후 40여 년 동안 주요 지상 전투 장갑 전투 차량(AFV)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크레이튼 W. 에이브럼스 장군(37기갑대대 사령관, 당시 육군 참모총장)의 이름을 딴 에이브럼스 전차는 역대 최고의 전차 중 하나로 꼽힙니다.

2023년 9월, 구형 M1A1 에이브럼스 전차 31대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사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인도되었습니다. 그러나 M1A1 전차는 신형 M1A2 전차보다 무겁고 연료를 더 많이 사용했으며 현대식 무기에 더 취약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실제 교전을 통해 관찰한 결과 이 모든 것이 사실임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구형 M1A1/2 플랫폼에서 벗어나 신형 M1E3 에이브럼스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비교적 오래 지속되지 않았던 페르시아만 전쟁(일명 사막의 폭풍 작전)(1990년 8월~1991년 2월) 동안 에이브럼스는 그 영역의 주인이었습니다. 뛰어난 화력(M256 120mm 스무스보어 주포), 속도와 기동성(하니웰 AGT1500 가스터빈 엔진 탑재), 고농축 우라늄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진 기밀 장갑의 조합으로 이라크 군이 소집할 수 있는 그 어떤 병력보다 우위에 있었습니다.

특히 걸프전뿐 아니라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차 전투로 꼽히는 이라크전에서는 이를 몇 번이고 증명해 보였습니다. 물론 탱크의 역사는 19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탱크가 얼마나 많이 생산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이브럼스 전차


육군은 1,900대의 M1A1 에이브럼스를 사막의 폭풍에 보냈습니다. 1990년 2월 24일부터 28일까지 사막 세이버 작전이라고 불리는 지상 공격이 진행되었으며, 36시간 동안 3,000대 이상의 탱크가 참여한 73 이스팅, 메디나 리지, 공포의 밤(공식 명칭: 노퍽 전투) 등 일련의 전차 대 전차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2월 26일, 맥마스터 대위(제2기갑기갑연대)는 14대의 에이브럼스 전차를 지휘하며 단 한 대의 손실도 없이 50대가 넘는 이라크 전차를 파괴했습니다(73 이스팅 전투). 어떤 지형에서도 기동 사격이 가능한 아브람의 능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저녁이 되자 폭풍우가 몰아쳐 전장은 진흙 구덩이로 변했습니다. 한편 후퇴하는 이라크 병사들이 유전에 불을 질렀고, 기름기 가득한 연기는 전투를 진정한 "공포의 밤"으로 만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에이브럼스 전차에는 FLIR("새로운" 열화상 기술)를 비롯한 몇 가지 놀라운 기술이 탑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군은 이라크 탱크 600여 대를 파괴하고도 몇 대만 잃을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 공화군 수비대는 메디나 고지에서 최후의 항전을 펼쳤습니다. 이 마지막 전차 전투는 40분 동안만 진행되었으며 약 3,000대의 전차가 동원되었습니다. 에이브럼스 전차는 이라크 전차보다 약 3,280피트 앞선 사거리와 A-10 워호그의 도움으로 348대의 전차로 이라크군을 빠르게 제압했습니다. 추산에 따르면 사막의 폭풍 동안 이라크군은 약 3,300대의 탱크를 잃은 반면 연합군은 31대만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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